한국의 우편/물류계는 요즘 새롭게 바뀌는 우편 시스템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다.


2014년부터 기존의 지역으로 구분하던 주소에서 도로를 기준으로 하는 주소로 전면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일부는 기존의 알 수 없는 번지수보다 이해하기 쉬운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환영하는 의견을 보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시스템을 무리하게 도입한다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도로명 주소를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1. 한국의 도시는 계획도시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한국의 도시는 예로부터 씨족/부족 사회가 커지며 군락이 형성 된 형태라 바둑판형 계획도시가 아니라 방사형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 길이름 만으로 주소를 표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난개발 등으로 이름 붙이기도 애매한 골목길이 수도 없이 많은데, 어떻게 길이름으로 주소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울 강남 일대와, 경상남도의 창원 등 매우 제한적인 지역만 계획적으로 디자인 됐는데, 이런 지역이 아닌 이상 도로명 주소는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은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한국보다 짧은 역사 덕분에 많은 도시들이 계획에 의해 설계되었는데, 일부 도시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동부의 가장 오래 된 도시 중 하나인 보스턴(Boston)을 예로 들어보자.


- Daum 지도로 30m 축척으로 본 창신2동 일대


- Google 지도로 100m 축척으로 본 보스턴 하버드 대학(Harvard University) 서쪽 일대


두 지도의 축척을 같게 비교하고 싶었지만, 지도를 제공하는 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축척으로 나타내기 힘든 점은 좀 아쉽다.


하지만 보스턴의 도로가 창신2동과 마찬가지로 바둑판식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면 보스턴만 예외적으로 도로명 주소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시스템을 사용할까?


아니다. 보스턴 역시 아무 문제 없이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창신2동의 건물들이 상대적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감이 있긴 하지만, 어떤 건물이든 건물까지 접근하는 길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건물에 도로명 주소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2. 중복되는 도로 이름이 너무 많다.


우편번호 검색을 위해 '대학로'를 검색하면 전국에서 수십 수백개의 대학로 길이 검색된다.


'한마음' 이라는 이름의 길도 수십개가 검색된다.


대충 대충 지어놓은 듯한 길이름이 전국적으로 중복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큰 대학이 있는 동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길은 'University' 라는 이름을 가진 길이다.


수십 수백가지의 각종 University Ave. / University St. / University Rd. 등을 찾을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지 못할까?


아니다. 역시나 아무 문제 없다.


길 이름은 가장 기본 단위이고, 그보다 큰 도시와 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길 이름이 같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



3. 전통이 있는 동/읍/면/리 등의 지역명이 사라진다.


한국의 지역명은 대부분 두글자의 한자로 되어있는데, 이 지역명은 예로부터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가 있는 지역명 이다.


이런 지역명이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만약 실제로 그렇다면 좀 가슴아픈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고 속단할 수도 없다.



다시 한 번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행정구역은 한국의 행정구역과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 참고 포스팅 ( 미국의 행정구역 - 카운티(County), 시(City) )


한국은 법적으로 어느정도 규모가 되야 광역시, 시 등으로 승격이 된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에는 이런 시(City)의 개념이 한국보다 훨씬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City 라고는 하는데, Village/Town/Township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거의 한국의 동/읍/면/리 정도의 규모다.


- Google 지도로 본 시카고(Chicago)와 그 주변 도시들


위 지도는 미국의 3대 도시 중 하나인 시카고의 지도다.


일반적으로 '시카고' 라고 하면 위의 지도에 나온 지역 일대를 모두 통틀어서 시카고 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실제 City of Chicago 는 훨씬 작은 지역이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시카고는 Greater Chicago 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시와 그 주변 수도권을 통틀어서 '서울' 이라고 말하는 느낌이라는 거다.


주변에 보면 Oak Park, Cicero, Burbank, Park Ridge, Elmhurst 등으로 써있는 글씨가 보일텐데, 이게 뭔가 싶은데 사실 모두 다 City of Chicago 같은 도시다.


위키피디아 자료에 의하면 2010년 기준 Burbank 시의 인구는 28,925 명 이다.


비교자료로 한국 위키피디아 2012년 기준 서초동의 인구는 21,653 명 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데, 미국에서 하나의 시의 인구와 한국에서 하나의 동의 인구수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 도로명 주소를 사용해도 자잘한 구역의 지역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2015년에 우편번호 체계도 현재의 6자리에서 미국과 같은 5자리로 바뀐다고 하는데, 이 때 미국처럼 행정구역을 변경하리라 예상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야기가 있는 전통적인 지역명'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몇 달 전, 한국에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강남 일대의 이곳저곳을 방문해야 했다.


스마트폰의 Daum 지도, Naver 지도를 사용하면 간편하겠지만, 워낙에 스마트폰 로밍 가격이 비싸서 데이터를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지리를 찾아야했고, 목적지에 떠나기 전에 집에서 컴퓨터로 검색하고 스크린을 캡쳐해서 위치를 찾곤 했다.


지하철 몇 번 출구에서 어떤 빌딩을 끼고 돌아서 몇 번째 골목에 위치해 있다.

택시타고 어느 빌딩 앞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와서 몇 번째 골목에 있다.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건물의 위치를 알려주기도 했는데...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면 그 주변을 여러차례 맴돌 수 밖에 없었다.


'큰 길', '골목' 등의 아주 애매모호한 길 이름 때문이었다.


번지수를 알려주고 간판을 알려줘도 초행길에 빌딩 사이에서 목적지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도로명 주소라도 초행길에는 헤맬 수 있지만, 도로를 기준으로 목적지가 어디쯤 인지는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경험이었다.



어쩌면 한국사람들 대부분이 위의 경험에서 말한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이미 '큰 길', '골목' 등의 길 위주로 주소를 설명하고 있는데, 인식을 하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을 새삼스럽게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시행 초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일단 지도회사는 모든 지도를 도로 위주로 바꿔야 할 것이고, 택배/물류회사 에서도 직원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수십년간 써왔던 기존 지역명 주소 시스템에서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주소를 외워서 쓰는게 귀찮고 번거로울 수 있다.



물론, 한국식 도로명 주소가 얼마나 잘 설계됐는지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해서 모든 주소가 더 찾기 쉬워졌는지는 단언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서 도로명 주소가 더 낫다고 판단했기에, 우편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 사용하는 우편시스템 역시 한번에 완벽하게 만들어서 지금까지 사용하는 것이 아니듯이, 만약 시행 후 문제가 생긴다면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가끔은 이런 변화로 인해 생활이 훨씬 더 편리해 지기도 하기에,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것 같다.



*** 이 포스팅이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Posted by Pac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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