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생활하다보면 자연스레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도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의 이미지를 좋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미국서 벌써 10년 넘게 살다보니 어느새 애국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곤 하는데...



한 번은 어떤 미국 아주머니를 도와 줄 일이 있었다.


컴퓨터가 망가졌는데 혹시 고칠 수 있느냐는 것 이다.


보통 미국사람들은 이런 때 A/S를 맡기는데, 이 아줌마는 특이하게도 나한테 도움을 청하는 것 이었다.


특별히 바쁜 일도 없고, IT 강대국 한국의 우수성과, 한국인의 친절함도 보여줄겸 아줌마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컴퓨터 관리를 어떻게 한건지 백신으로 주요파일 스캔만 했는데 바이러스가 수백 수천개다.


그래서 '모든파일 검사 및 치료'를 눌러놓고 있으니 마땅히 할게 없다.


아줌마와의 잡담은 그렇게 시작됐고, 자연스럽게 한국 얘기가 나왔다.



아줌마 : 내 아들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나 : 정말요?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요?


아줌마 : 원래 한국에 군대와 관련 된 일을 하러 갔다가, 지금은 세무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나 : 대단한데요. 한국엔 언제 갔어요?


아줌마 : 벌써 10년도 넘었다. 서울에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한국에 가 본 적이 없다.


나 : 아들이 한국에 대해 뭐라고 합니까?


아줌마 : (잠깐 생각하더니) 제 3세계 같은 느낌이 있다고 한다.


나 : (뭔가 대단히 당황스럽고 황당하며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제 3세계가 무슨 말이죠?


아줌마 : 지저분 하고, 질서도 잘 안 지키고, 그런다고...


나 : (완전 열받아서) 장난 합니까? 서울이 미국 대다수의 도시보다 훨씬 발전했고, 잘 살고 있습니다.

주택 가격도 훨씬 비싸고, 개인 자산도 어지간한 미국사람보다 훨씬 많아요.

무슨 얼어죽을 제 3세계 라니...



내지르고 보니 유치한 감이 있었지만, 기껏 도와주는 사람한테 모국에 대해 모욕적인 얘기나 하고, 짜증이 났다.


기분이 확 나빠져서 스캔 중인 백신 취소시키고, 다 고쳤으니 쓰라고 했다.


뭔가 상당히 기분이 나쁜데, 어떻게 풀 방법도 없고, 한국의 국력이 약한 것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 달 뒤, 오래간만에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약 2주일 동안 지내며 그동안 바뀐 서울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오랜만이라 모든게 새로우면서도, 비슷비슷한 모습의 사람들끼리 부대껴 지내는 친근한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도착 이튿날부터 그 미국아줌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길거리에 휴지통이 많지 않아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쓰레기를 여기저기 버려놓은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미국에서 십수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껌을 밟은 적이 없는데, 한국에서 2주 동안 세번이나 밟았다.


심지어 미국에서 제일 더럽다는 도시 뉴욕에서도 껌은 안 밟았었는데;;;


물론 한국에서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바리바리 걸어다니는 시간이 많긴 했지만, 신발에 남은 거뭇거뭇한 껌의 흔적을 보니 불쾌했다.



<출처 : blog.daum.net/morningnewsi/8552526>



그리고 그 아줌마 아들이 왜 질서가 없다고 하는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길거리의 차들이 왜 그렇게 죄다 인도에다 주차를 해 놓는 것인지, 그렇게 인도에 주차하는게 불법인 것 같은데 딱지도 안 떼고 견인도 안 하고.


교차로에서는 신호가 진작에 바뀌었는데도 꼬리물기 때문에 끝없이 차가 막히고.


오토바이들은 좁은 골목이건 넓다란 교차로건 사람이 있건 말건 신호가 있건 말건 무시하고 위험천만 무인지경으로 돌아다니는데 저러다 사고나지 싶었다.


한국 사람들이 워낙에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것 같은 일들은 이해하고 넘어가더라도, 곳곳에서 무질서 한 모습을 보고있으니 괜시리 그 아줌마한테 성 냈던게 무안해질 정도였다.


마치 15년 전 처음 중국에 가서 무질서함 때문에 느꼈던 컬쳐쇼크가 생각났으니...



그렇게 2주간의 꿈같은 휴식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느낀 여러가지 복합적인 느낌이 있는데, 이유 불문하고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 있다.


내 가족이 잘못한 것을 내가 지적을 할 지언정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기분 나쁘듯이, 만약 또 다시 한국에 대해 비하하는 말을 들으면 그 때도 똑같이 화가 날 것 같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미국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이래서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 피곤하다.




*** 이 포스팅이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Posted by Pac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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